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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
1. 이 인물은 그리스의 종교가·철학자·수학자이다. 이 인물은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으며, 수학에 기여한 공적이 매우 커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 정리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 것이며, 그의 증명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피타고라스
그리스의 철학자ㆍ수학자ㆍ종교가. 사모스(Samos)의 명문 출생. 후에 크로톤(Croton)에 이주하여 종교 단체 겸 학술단체를 창립하고, 당시 종교부흥 운동에 학문을 결부시키려 했다. 메타폰티온(Metapontion)에서 사망했다. 그의 학당은 영혼의 불멸과 윤회(輪廻), 사후의 응보를 믿으며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금욕과 계율에의 복종을 중히 여기고 원시적 터부(taboo)의 흔적을 나타내는 계율, 아폴론(Apollon) 숭배의 주요 관념인 결신(潔身) 등을 믿었다. 그들은 이 영혼을 진정시키는 음악과 영원 불변의 진리를 가르치는 수학의 연구에 전진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수는 만물의 근본 물질이며 원형이고, 만물은 수의 관계에 따라서 질서 있는 코스모스를 만든다고 했다. 우주를 장식이라든가 질서의 뜻을 가진 코스모스라 이름 지은 것도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수학을 영혼의 정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하학ㆍ수론ㆍ측량술ㆍ계산술의 단계를 넘어서 이론에까지 발전되었다. 수를 만물의 원리로 삼은 것은 수학ㆍ천문학 발달에 좋은 자극이 되었으나, 한편 너무 조급히 수 및 그 관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여, 무의미한 수의 신비주의에 빠져버린 결과가 되었다. 이 학파는 수학적 법칙이 우주를 관찰하고 있음을 주장하여, 수학을 실용 수학의 영역에서 이론수학으로까지 높인 점에서 불멸의 공적을 남겼다. 그의 '피타고라스 정리'는 유명하다.
#악당
2. 이 인물은 구약성서 <열왕기>에 등장하는 악인이다. 이 인물은 고대도시인 페니키아 왕비로 악녀의 대명사였다. 성서의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이 믿는 바알(Baal) 신을 숭배하라고 반복적으로 압박했으며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이세벨(Jezebel)
1. 시돈(페니키아) 왕 엣바알(바알 제사장)의 딸로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인 아합(B.C. 874-853년)의 아내가 된 자(왕상 16:31). 가증스런 우상 숭배자이며, 성경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여인으로 지탄받고 있다(왕상 21:5-16; 왕하 9:22). 아합의 아내가 된 이세벨은 먼저 남편 아합을 맹신적인 바알 숭배자로 만들었고(왕상 16:30-31; 21:25-26), 이스라엘 내에 음란하고 부패한 바알 숭배를 권장했으며, 수백 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포섭하여 조종했고, 사마리아에 바알 제단과 아세라 우상을 세웠다(왕상 16:31-33; 18:4, 13, 19).
그에 더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했으며(왕상 18:4-13), 갈멜 산상에서의 영적 전투에서 패배한 후 엘리야를 죽일 계략을 꾸몄다(왕상 19:1-2, 10). 그리고 남편 아합의 그릇된 욕심에 동조하여 나봇을 살해하고 그의 과수원을 탈취했으며(왕상 21:1-16), 또 자신의 딸 아달랴를 다윗 왕가와 결혼시킴으로써 바알 숭배의 악한 영향력이 남왕국 유다에까지 미치도록 했다(왕하 8:25-27; 대하 21:5-7). 그리고 백성을 미혹하는 음행과 술수를 많이 행했다(왕하 9:22).
한편 이세벨의 이 같은 가증스런 죄악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했고, 결국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녀의 처참한 죽음(개들이 그의 시체를 뜯어 먹는)을 예언했으며(왕상 21:23; 왕하 9:10), 그 결과 아합 왕가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을 행했던 예후에 의해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됨으로써 엘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왕하 9:7, 30-36).
2. 소아시아에 위치한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을 유혹하여 음행에 빠지게 한 거짓 여선지자(계 2:20). 그 행실이 구약 당시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상징적 이름이다.
jezebel은 "수치를 모르는 여자, 요부, 독부"란 뜻이다. 성서 「열왕기 상」에 나오는 이스라엘왕 아합(Ahab)의 아내인 제저벨(Jezebel)에서 나온 말이다. 제저벨은 희대의 독부를 가리킨다. 악녀, 닳고 닳은, 굴러먹은 여자라는 뜻이다. 제저벨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함의를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심각하던 시절 흑인 여성에게 이런 이미지가 씌워졌다.
#예술가
3. 이 인물은 고대 그리스 최대의 여류시인이다. 소녀들을 모아 음악·시를 가르쳤으며, 문학을 애호하는 여성 그룹을 중심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녀는 생애의 대부분은 레스보스 섬에서 지냈는데 이 섬은 동성애자라는 설이 있으며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단어 ‘레즈비언’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다작 시인으로, 서정시·만가(挽歌)·연가·축혼가 모두가 솔직·간명·정확한 표현으로 개인적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사포(sappho)
에게해(海) 레스보스섬[島]의 미틸레네 출생. 귀족 명문 출신으로 당시의 정치적 분쟁을 피하여 한때는 시칠리아섬에 살았으나, 생애의 대부분은 레스보스섬에서 지냈다. 레스보스섬의 아이오리스 방언으로 시를 짓고, 그녀 자신의 이름도 그 방언으로 프사포라고 불렀다. 때때로 아름다운 사포라고 형용되고 있으나, 사실은 추한 여인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에 견줄 만한 미인으로 이상화된 모습이 전해져 내려왔다. 게르퀴라스와 결혼하여 딸 크레이스를 두었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소녀들을 모아 음악·시를 가르쳤으며, 문학을 애호하는 여성 그룹을 중심으로 활약한 것 같다. 또한 형제인 카라쿠소스가 이집트의 매음부를 사랑하여 돈을 탕진한 일을 책망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사포가 미틸레네의 선원 파온과의 비련으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말은 후세에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이외의 그녀 생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시인 아르카이오스와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시를 서로 교환하였다고 한다. 사포는 다작 시인으로, 그녀의 작품이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운율에 의하여 9권(또는 8권, 7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제1권에 1,320행이 수록되어 있었다니까 그의 전 작품의 양은 방대하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2편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가 인용이나 단편(斷片)에 불과하여 총계 약 700행이다. 1900년 이집트에서 상당한 분량의 단편이 발견·추가되었다. 제1권 서두의 노래는 유명한 여신 아프로디테에 바치는 찬가이고, 마지막 권은 혼례의 축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는 서정시·만가(挽歌)·연가·축혼가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솔직·간명·정확한 표현으로 개인적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그녀를 10번째의 시여신(詩女神)이라 칭송하며 호메로스와 더불어 대표적 시인으로 생각하였다.
#개혁가
4. 이 인물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 집정관 겸 조정자로 선정되어 정권을 위임받은 후, ‘○○의 개혁’이라 일컫는 여러 개혁을 단행하였다. 에레게이아 기타의 시형(詩形)으로 쓴 서정시가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솔론(Solon)
그리스 7현인(七賢人)의 한 사람으로서, 명문이지만 중류 재산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살라미스섬의 영유를 둘러싼 메가라인(人)과의 싸움(BC 596)에서 명성을 얻은 결과, BC 594년 집정관 겸 조정자로 선정되어 정권을 위임받았다. 당시 빈부의 극심한 차이에서 빚어진 사회 불안을 개선하기 위하여 ‘솔론의 개혁’이라 일컫는 여러 개혁을 단행하였다. 먼저 ‘부채의 조정 포기’와 ‘채무 노예의 해방과 금지’를 단행하여 가난한 사람의 구제에 힘썼다.
이어서 토지재산의 다과에 따라 시민을 ① 500석급(石級:Pentakosiomedimnoi), ② 기사급(Hippeis), ③ 농민급(Zeugitai), ④ 노동자급(Thetes)의 4등급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최하급 제4급의 노동자라도 민회(民會)에 참석하거나 재판에 호소할 수 있었다.
또한 400명으로 구성된 평의회를 신설하고, 오래 된 드라콘법(Drakō n法:BC 621년 공포) 중 살인에 관한 조항 외에는 모두 폐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였다.도량형(度量衡)을 개정하고 외국에서 수공업자를 초청하였으며, 올리브 이외의 농산물 수출을 금지하는 등 경제적인 여러 개혁도 단행하였다. 그러나 토지의 재분배를 기대한 빈민은 토지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자는 대부금의 조정 포기 및 소유 노예의 해방으로 인하여 입은 손실 때문에 모두 솔론의 개혁에 불만을 품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솔론은 상업과 관광을 겸하여 이집트·키프로스·소아시아에까지 외유하였다.
그러나 그가 리디아왕(王) 크로이소스와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논의하였다는 헤로도토스의 말은 연대상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귀국 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僭主)에 대한 야망이 있음을 알고 이를 반대하여 시민을 만류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에레게이아 기타의 시형(詩形)으로 쓴, 그의 서정시는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아테네 사회나 그의 정치적 입장 및 현인의 면목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선지자
5. 이 인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BC 625년경 유다 왕국 말기 요시아왕 때 활동한 대예언자. 젊어서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고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활발한 예언자적 활동을 하였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예레미야 (Jeremiah)
《예레미아서》의 주인공으로, 베냐민 지방 아나돗의 사제(司祭)인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고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활발한 예언자적 활동을 하였다. 오랫동안 하느님을 배반하고 율법을 무시해 온 이스라엘인들을 향하여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야훼의 노여움의 채찍이 가해질 것을 경고하였다.
즉 나라가 패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고 하느님에게로 돌아서기를 거부하였는데, 얼마 후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그때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는 그를 후대하여 유대에 머물도록 하였다. 유대 고관을 살해한 동포들의 강요로 이집트로 함께 갔으나, 얼마 후 그곳에서 죽은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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