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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1. 이 인물은 몽골제국의 건국자이며 몽골의 유목 부족을 통일하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동유럽 일대를 정복하여 인류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몽골 제국의 기초를 쌓았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칭기즈칸(Chingiz Khan)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아명은 테무진[鐵木眞, temüjin]이다. ‘칭기즈 칸(Chingiz Khan)’이란 ‘우주(宇宙)의 군주[大汗]’란 뜻으로 ‘칭기즈(Chingiz)’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고대 투르크와 몽골에서 바이칼호를 가리키며 ‘바다’나 ‘넓게 펼쳐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던 ‘텡기스(tenggis)’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고, 몽골어로 ‘강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칭(ching)’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몽골 전통 신앙에서 ‘광명의 신’을 뜻하는 ‘하지르 칭기즈 텡그리(Hajir Chingis Tengri)’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으며, 그가 1206년 몽골 제국의 ‘칸[大汗]’으로 즉위하였을 때 5색의 서조(瑞鳥)가 ‘칭기즈, 칭기즈’ 하고 울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태어난 연도도 정확하지 않아 1155년, 1162년, 1167년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되어 부족이 흩어졌기 때문에 빈곤 속에서 성장하였고, 당시 강세를 자랑하던 케레이트 부족의 완칸 아래서 점차 세력을 키워, 1189년경 몽골씨족연합의 맹주(盟主)에 추대되어 칭기즈칸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1201년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고, 타타르·케레이트를 토벌하여 동부 몽골을 평정하였으며(1203), 군제(軍制)를 개혁한 후 서방의 알타이 방면을 근거지로 하는 나이만 부족을 격멸하고(1204) 몽골 초원을 통일하였다.
1206년 오논 강변 평원에서 집회를 열고, 몽골제국의 칸에 오르면서 씨족적 공동체를 해체, 군사조직에 바탕을 둔 천호(千戶)라고 하는 유목민집단을 95개 편성하였다. 천호 및 그 하부조직인 백호는 동시에 행정단위이며, 천호장·백호장에는 공신들을 임명하여, 이들을 좌익(左翼)·중군(中軍)·우익의 만호장 지휘하에 두었다.
또 케시크테이라고 하는 친위대를 설립하고 천호장·백호장의 자제로 편성하여 특권을 부여, 몽골 유목군단의 최정예 부대를 구성하였다. 즉위한 이듬해 서하(西夏)를 점령하고, 금(金)나라에 침입하여 그 수도인 중도(中都:지금의 베이징)에 입성하였다(1215). 한편 앞서 멸망된 나이만의 왕자 쿠출루크가 서요(西遼)로 망명하여 그 나라를 약탈하였기 때문에, 부장 제베를 파견하여 토벌한 후에 병합하였다(1218). 또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의 패자(覇者) 호레즘국과 교역하려고 파견한 사절단이 살해되자, 이것을 계기로 서정(西征)에 올랐다(1219).
오트랄·부하라 등의 도시를 공략하였고, 제베와 수부타이가 인솔한 별군(別軍)은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를 카스피해상의 작은 섬으로 내몰아 굶어 죽게 하였고(1220) 다시 캅카스산맥을 넘어 남러시아로 출동, 러시아 제공(諸公)의 연합군을 하르하 강변에서 격파하였으며(1223), 크림을 정복한 후 본군에 합류하였다. 본군은 그에 앞서 발흐를 점령하고 무하마드의 아들 잘랄웃딘과 인더스 강변에서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1221).
그러나 뜨거운 열기에 견딜 수 없어 철군하기로 결정하고, 차가타이·오고타이군과 합세하여 귀국하였다(1225). 이때 이슬람교도의 공예가와 장인(匠人)의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포로로 데리고 왔다. 정복한 땅은 아들들에게 각각 분할해주어 나중에 한국(汗國)을 이룩하게 하였으나, 몽골 본토는 막내아들 툴루이에게 주기로 하였다.
이어 1226년 가을 서정(西征) 참가를 거부한 서하를 응징하려고 서하의 수도 닝샤[寧夏]를 포위하였으나 간쑤성 칭수이현[淸水縣] 시장[西江] 강변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샤머니즘 신자였으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하였고 외래문화의 흡수에 노력하였다. 특히 위구르 문화를 우대하여 나이만 정벌 당시 포로로 데리고 온 위구르인 타타동가에게 여러 아들들로 하여금 위구르 문자를 배우게 하였고, 그것을 국자(國字)로 채용하였다. 이 위구르 문자로부터 몽골문자와 만주문자가 만들어졌다. 또 요(遼)나라 유신(遺臣) 야율초재(耶律楚材)와 위구르인 진해(鎭海)를 중용하고 그 교양과 정치적 능력을 이용하여 정복지 통치에 힘을 기울였다.
#문학 #인물
2. 이 인물은 미국의 작가로 노벨문학상(1949), 퓰리처상 2회 수상자이다. 주요 작품은《우화》,《자동차 도둑》등이다. 미국 남부사회의 변천해온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윌리엄 포크너(William Cuthbert Faulkner)
미시시피주(州)의 뉴올버니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았다.
남부(南部)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근처인 옥스퍼드로 옮겨 그의 생애의 태반을 이 곳에서 보냈다.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고교 시절 시집(詩集)을 탐독하고 스스로 시작(詩作)을 시도하였으나 고교를 중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지원해서 캐나다의 영국공군에 입대하였고, 제대 후 퇴역군인의 특혜로 미시시피대학교에 입학하여 교내 정기간행물에 시를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1920년 대학도 중퇴하고 곧 고향으로 돌아와, 1924년 친구의 도움으로 처녀시집 《대리석의 목신상(牧神像) The Marble Faun》을 출판하였다.
그후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26년 전쟁으로 폐인이 된 한 공군장교를 주인공으로 한 첫작품 《병사의 보수 Soldier’s Pay》를 발표하고, 1927년 풍자소설 《모기 Mosquitoes》, 1929년 남부귀족 사토리스 일가(一家)의 이야기를 쓴 《사토리스 Sartoris》를 발표하였다.
이어 1929년 또 다른 남부귀족 출신인 콤프슨 일가의 몰락하는 모습을 그린 문제작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를 발표하여 일부 평론가의 주목을 끌었다.
다시 1930년 가난한 백인 농부 아내의 죽음을 다룬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 As I Lay Dying》, 1931년 한 여대생이 성불구자에게 능욕당하는 사건을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작품 《성역(聖域) Sanctuary》(1931)을 발표하여 일반 독자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8월의 햇빛 Light in August》(1932) 《압살롬, 압살롬 Absalom, Absalom!》(1936) 《야성의 종려(棕櫚) The Wild Palms》(1939) 《마을》 《무덤의 침입자 Intrudrer in the Dust》(1948) 《우화(寓話) A Fable》(1954, 퓰리처상 수상) 《읍내(邑內) The Town》(1957) 《저택(邸宅) The Mansion》(1959), 그리고 유머를 특색으로 하는 《자동차 도둑》(1962, 퓰리처상 수상) 등 장편소설을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이 밖에도 중편과 단편도 상당히 써서 《곰 The Bear》을 비롯한 몇 권의 단편집도 펴냈다.
이상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포크너는 미국 남부사회의 변천해온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요크나파토파군(Yoknapatawpha郡)’이라는 가공적인 지역을 설정하고 그 곳을 무대로 해서 19세기 초부터 20세기의 1940년대에 걸친 시대적 변천과 남부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결같이 배덕적(背德的)이며 부도덕한 남부 상류사회의 사회상(社會相)을 고발하였다.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와 휴머니즘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규명하려는 그의 의지의 발현(發現)이라 할 수 있다.
#미술 # 인물
3. 이 인물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 15세기 르네상스미술은 그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이 인물의 주요 작품에는 <모나리자>, <성 안나>,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피렌체 근교 빈치에서 출생하였다.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카타리나(Catarina)라는 이름을 가진 농사꾼의 딸로, 신분의 차이로 아버지와 공식적인 혼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였다. 1466년 피렌체로 가서 부친의 친구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에게서 도제수업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인체 해부학을 비롯한 자연현상의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습득하여, 당시 사실주의의 교양과 기교를 갖추게 되었다.
그의 특색인 깊은 정신적 내용의 객관적 표현은, 그의 놀라운 사실적 표현기교의 구사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사실상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사실기법을 집대성하여, 명암에 의한 입체감과 공간의 표현에 성공하였다. 점차 15세기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주관과 객관의 조화로 고전적 예술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인체해부를 묘사한 그림들은 인체묘사와 의학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연구는 수학·물리·천문·식물·해부·지리·토목·기계 등 다방면에 이르며, 이들에 관한 수기(手記)나 인생론·회화론·과학론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기체역학·동물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연구결과는 19세기 말에 들어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그의 과학적인 천재성으로서 조명되고 있다. 현재 그의 기록이 23권의 책으로 남아 있다.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 즉 원근법과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이 그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명성은 몇 점의 뛰어난 작품들에서 비롯하는데, 〈최후의 만찬〉·〈모나리자〉·〈동굴의 성모〉·〈동방박사의 예배〉 등이 그러하다.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생존했던 가장 경이로운 천재 중 하나다. 1519년 프랑수아 1세의 초빙으로 프랑스의 보아주에 가서 건축·운하 공사에 종사하다가 죽었다.
이렇게 그는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생애를 대개 5시기, 즉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500~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로마·앙부아즈 시대(1513~1519)로 구분한다.
#과학 #인물
4. 이 인물은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하여 1905년 발표하였으며,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인 맨해튼계획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 이물은 누구일까?
정답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3월 14일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의 울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업가였으며 가족들은 유대교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린시절 판에 박힌 학습과 교육방식을 경멸하여 무례한 행동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청소년기에 수학과 물리학에 취미를 가졌고 아라우(Aarau)에 있는 주립학교로 진학하여 과학수업에 심취했다. 이 시기를 그의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낙방하였다가 재수를 하여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에서는 고전 물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루드비히 볼츠만,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등 이론 물리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하며 혼자서 공부하기를 즐겼다. 1901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하였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베른 특허국의 관리 자리를 얻어 5년간 근무하였다. 1903년 대학 동창이자 공동연구자 였던 밀레바 마릭(Mileva Maric)과 결혼하였고 15년 후 이혼하게 된다. 특허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발명품을 검사하지 않을 때에는 항상 물리학을 연구했다.
1905년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양자설, 물질이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브라운운동의 이론,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엎은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논문들은 단 8주만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동안의 인식을 전환시킨 논문으로 평가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종래의 시간·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으며, 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몇 가지 뜻밖의 이론, 특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었다.
브라운운동에 관한 기체론적 연구는 분자물리학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고, 플랑크의 복사법칙을 검토하여 광양자설에 도달, 그 예로서 광전효과를 설명하였다. 1911년 국제물리학회가 최초로 개최될 때 참가하여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철학은 과학으로 부터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1913년 베를린대학 교수겸 카이저 빌헬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나, 그 동안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重力)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하고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 이 이론에서 유도되는 하나의 결론으로서 강한 중력장(重力場) 속에서는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예언하였다. 이것이 영국의 일식관측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후 중력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장의 이론으로서의 통일장이론으로 확대할 것을 시도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그의 특이한 외모(헝클어진 머리, 콧수염, 보헤미안적 스타일)와 체면을 세우지 않는 행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유대인 출신인 그는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 평화주의자로서 활약하였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자, 1933년 독일을 떠나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 통일장이론 개척에 힘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미국의 과학자와 망명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통감하여 당시 대통령 F.D.루스벨트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그는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힘썼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이용한 것으로서, 그것은 2차 대칭하는 텐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생각해낸 통일장이론은 2차 대칭이 아닌 텐서에 의거한 이론이다. 이것을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음악 #인물
5. 이 인물은 17세기 영국 최대의 작곡가이다. 평생 영국 왕실의 작곡가로 있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는 한편 오페라, 교회음악, 실내악의 많은 명작을 남겼다. 오페라의 대표작 《디드와 이네아스》는 오늘날까지도 상연되고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 : 헨리 퍼셀
런던 태생인 영국의 작곡가. 17세기 후반의 영국 음악계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영국 음악사상 최대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거장이다. 영국의 바하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선율이 샘물처럼 솟아 나오는 점에서 슈베르트와도 비교되는 천재이다. 왕실부의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활동한 음악가의 집안으로, 훌륭한 음악가를 많이 배출했다. 6세 때에 왕실 교회의 아동 합창단에서 노래 부르고, 9세 때에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매듀 록의 뒤를 이어받아 왕실 악단의 상임 작곡가에 임명되었다. 1679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고, 80년경부터 가극의 작곡을 시작하여, 《디도와 에네아스》와 같은 명작을 썼다. 이것은 고대의 영국 가극 중의 걸작임과 동시에, 현재 상연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가극의 하나이어서, 근래 한층 그 진가가 인정되어 가고 있다.
기악에도 빛나는 업적을 남겨서, 2권의 트리오 소나타 등 수많은 걸작을 쓰고 있으며, 교회용 음악과 칸타타, 실내악 등도 많이 남겼다. 36세로 애석히도 세상을 떠나, 국민의 존경과 애도 속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유해가 안치되었다. 퍼셀의 특징은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본격적인 폴리포니의 기법을 기초로 하여, 영국과 프랑스 음악의 유행을 섭취하여 영국 음악에 동화시킨 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현대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퍼셀의 옴악을 제재로 하여 관현악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 가극 《다도와 에네아스》(1689), 트리오 소나타 제1권, 제2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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