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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모음/지뽐 퀴즈

[015] 지적 허세 뽐내기 좋은 퀴즈 모음(난이도 있는 상식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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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최대 걸작으로,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가(家)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렌초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라고 하며, 당시 철학자들이 설명한 인간의 영혼을 신플라톤적 해석을 통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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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와 함께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의 최대 걸작으로,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가(家)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렌초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라고 하며, 당시 철학자들이 설명한 인간의 영혼을 신플라톤적 해석을 통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그 남근을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키프로스섬 근해의 이 바다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였다는 그리스신화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는 푸른 바다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진주조개를 타고 바다 위에 서 있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있는데,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켜 그녀를 해안으로 이끌고 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펼쳐진 키프로스섬의 해안에서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외투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다.

꿈 속에 잠겨 있다가 방금 깨어난 듯한 표정과 나체를 감추려는 은근한 모습 등으로 신비로운 미의 여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수줍어하고 있는 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이며,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던 시모네타로 전해지고 있다. ㅇ;


#과학

2. 이것은  액체의 자유표면에서 표면을 작게 하려고 작용하는 장력을 말한다. 액면 부근의 분자가 액체 속의 분자보다 위치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액체는 표면적에 비례하는 표면 에너지를 가지고, 이로 인해 이것이 생긴다.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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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표면장력

 

고체 표면에 물을 뿌리면 방울이 맺히기도 혹은 넓게 퍼지기도 한다. 왁스를 칠한 유리 표면에는 물 방울이 맺히고, 반면에 깨끗한 유리 표면에는 물이 넓게 퍼져 얇은 막이 형성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상태의 유리 표면과 표면장력이 큰 물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토란(혹은 연꽃) 잎 표면에 내린 비는 마치 유리구슬 같은 물방울이 되어 굴러다니고, 소금쟁이가 수면 위를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물의 표면장력으로 인한 것이다.


#철학

3.  이것은 기원전 3세기 제논에서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리스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 학파이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탄생해 절충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물론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행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이 학파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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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스토아학파

 

알렉산더 제국과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은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르자마자 대대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알렉산더 제국은 곧 마케도니아와 시리아, 페니키아, 그리스, 이집트까지의 광활한 영토를 포함하는 대제국이 되었다.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제국의 동서를 오갔으며 이를 따라 수많은 사상이 교류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Hellenism)이 탄생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 제국은 급격하게 쇠퇴하였으나 헬레니즘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헬레니즘은 철학에도 영향을 끼쳐 기존 그리스 철학에 비해 보다 절충적이고 화합을 모색하는 경향이 강한 다양한 사상들이 생겨났다. 스토아학파는 그 가운데서도 당대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학파였다.

1)초기
창시자는 스토아학파의 제논으로 불리는 키티온의 제논(Zeno of Citium)이다. 그의 고향인 키티온(Citium)은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 섬에 형성된 그리스 식민 도시로 헬레니즘 문화와 함께 상업이 번성한 곳이었다. 무역선을 타고 아테네로 들어온 제논은 학파가 다른 여러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사상을 세웠다. 스토아학파의 명칭도 제논이 철학 강의를 했던 아테네의 공공건물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제논의 스토아 철학은 제자인 클레안테스(Cleanthes)에게로 이어졌다. 제2의 스토아학파 창시자로 불리는 크리시포스(Chrysippus of Soli)는 두 스승의 철학을 정리하여 크게 발전시켰다.

2)중기
스토아철학은 기원전 2세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중기 스토아학파로 분류되는 파네티우스(Panaetius of Rhodes)와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of Apameia)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이들은 유물론적 경향의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이 수용하기를 꺼렸던 플라톤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포시도니우스는 영혼이 신체와 함께 소멸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3)후기
네로의 스승이었던 루키우스 아나에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노예 출신으로 장관의 자리까지 오른 에픽테토스(Epictetus),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손꼽히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이다. 철학적 발전을 크게 이룩하지는 않았으나 인지도와 역량이 컸으며 스토아 철학을 현실 속에서 능동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역사 #인물 #종교

4.  이 인물은 ‘평화롭다’는 뜻. 이스라엘 통일왕국 제3대 왕으로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낳은 아들. 그는 이스라엘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시켰으며,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물질적 번영을 누리는 왕국을 건설하여 40년 간을 통치했다(B.C. 970-930년). 매우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으로, 그의 지혜는 동방이나 애굽의 현자들보다 더 위대했다고 전해지며, 3천여 개의 잠언과 1,000여 개의 노래를 짓기도 했고, 아가서, 잠언, 전도서, 두 편의 시편(시 72편, 127편)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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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솔로몬 왕

 

이스라엘 왕국 제3대 왕이며 현명한 판단과 결단력으로 '지혜의 왕'으로 알려졌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며 부왕인 다윗과 밧세바(Bathsheba)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밧세바는 히타이트의 용병과 이미 결혼한 사이였지만 다윗의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다.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에게는 여러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왕위를 둘러싸고 아들 간에 투쟁이 일어났으며 형제들을 물리친 솔로몬이 부왕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번성했으며 자신의 거처인 궁중에는 수백명의 후궁과 첩을 거느렸다. 이집트에도 영향력을 행사했고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페니키아로부터의 자재와 기술에 의하여 웅장한 신전을 예루살렘에 건설하였고, '계약의 궤(법궤, 언약궤 등으로도 번역되었음)'를 안치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성소이자 야훼 신성을 확립하였다. 성전에는 화려한 금과 상아 등이 가득했다.

정치적으로는 종래의 부족제를 무시하고 전국을 12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장관을 파견하여 징세나 부역의 사무를 맡게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교역의 요지에 위치하여 통행세를 징수한 외에 이집트, 페니키아, 아랍 등과의 통상을 장려하였고, 조선소(造船所)·제동소(製銅所)도 설치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구약성서 중 《아가(雅歌)》, 《잠언(箴言)》 등이 그의 저작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한 아기를 놓고 두 어머니가 싸우는 것을 재판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반대파를 누르고, 대외평화에 힘을 쏟아 왕국의 전성기를 이룩함으로써 후세 '솔로몬의 영화(榮華)'로 일컬어지는 융성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과중한 세금과 폭압정치를 하였고, 징병·징세·강제노동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부족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었으며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문학

5. 이 작품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이다. 1873년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며, 1875년부터 잡지 "루스키 베스뜨니끄"(러시아 메신저)에 연재했다. 1877년에 단행본 초판이 발행됐다. 《전쟁과 평화》와 함께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며,  이 작품에는 모두가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생활(오브론스키와 도리, 레빈과 키티, 카레닌과 안나)이 그려져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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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안나 카레니나


1875∼1877년 작. 이 작품에는 모두가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생활(오브론스키와 도리, 레빈과 키티, 카레닌과 안나)이 그려져 있다.

고관 카레닌의 정숙한 아내로서 안나는 페테르부르크의 호화저택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해 가지만 너무나도 관료적이고 이성적인 남편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녀는 마침내 미모의 청년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불륜의 사랑에 빠지고 이윽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만다. 그리고 사교계에서도 따돌림을 받아 애인과 더불어 외국으로 떠나버리는데, 이윽고 브론스키의 애정이 식어 가는 것을 깨닫게 되자 질투와 광기를 누르지 못하고 철도 자살을 꾀한다.

이 작품의 부제(副題)로 되어 있는 성경 말씀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는 신의 이름을 빌려서 작자 톨스토이가 이 불륜의 사랑에 대하여 가한 제재라고도 볼 수 있다. 레빈과 키티의 약혼에서 신혼에 이르는 생활은 그래도 작자와 소피아 부인과의 관계를 그린 것으로 야스나야폴리야나의 농촌에서의 두 사람의 생활은 작품 도처에서 잘 재현되어 있다.

사상적으로는 이보다 앞서 쓴 《전쟁과 평화》(1868∼1869)에서 볼 수 있는 생에 대한 예찬은 사라지고, 대신 레빈의 형의 임종 장면 등에서 생의 허무감,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희미하게나마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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