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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모음/지뽐 퀴즈

[014] 지적 허세 뽐내기 좋은 퀴즈 모음(난이도 있는 상식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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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물

1. 이 인물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이 인물은  40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해 많은 종교적 성악곡, 가곡 등을 남겼는데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협주곡 분야에서도 코렐리 등이 만든 형식을 발전시켜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의 세 악장형식의 독주협주곡과 합주협주곡을 작곡,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 인물의 주요작품에는 <조화의 영감>, <사계> 등이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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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베네치아 출생. 어려서부터 산마르코대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과 작곡의 기초를 배웠다.

1693년 수도사가 되고, 10년 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703∼1740년에는 베네치아 구빈원(救貧院) 부속 여자음악학교에 바이올린 교사로 근무하며 합주장·합창장을 역임하였는데, 그 동안 학생들을 위하여 작품을 많이 만들어 학교 관현악단에서 발표하는 등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였다.

또 한때는 만토바의 필립공의 악장으로 있었으며, 1716∼1722년에는 마르첼로와 알비노니의 영향을 받아 오페라 작곡에도 주력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 로마·피렌체·빈 등지를 연주여행하였으며, 또 국외에서도 여러 차례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40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적 성악곡, 가곡 등을 남겼는데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특히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협주곡 분야에서도 코렐리 등이 만든 형식을 발전시켜 갖가지 현악기와 관악기를 위한 독주협주곡과 합주협주곡을 작곡,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것은 대부분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의 세 악장형식이며, 알레그로악장에서는 으뜸조[主調]―딸림조[屬調]―관계조―으뜸조라는 전형적인 조구성(調構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다음 세대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으며, J.S.바흐는 비발디의 작품을 여러 곡 편곡하여 그 기법을 익혔다.

주요작품에는 신포니아 23곡, 합주협주곡 《조화의 영감(靈感)》,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사계》, 갖가지 독주악기를 위한 협주곡 다수와 실내소나타 12곡, 바이올린소나타 17곡 등이 있다.


#철학

2. 이것은 인간의 지식활동에 관련된 특정한 종류의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며 이들을 체계화하는 분야의 학문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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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논리학(logic)

 

이 지식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김씨의 큰 아이는 아들이다’와 같은 지식이다. 또한 ‘김씨의 큰 아이는 아들이고 그의 둘째 아이도 아들이고 셋째도 아들이다. 그리고 김씨는 현재 세 아이밖에 없다. 고로 김씨의 아이들은 모두 아들이다’와 같은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을 사실적 지식(事實的知識)이라고도 하고 귀납적 지식(歸納的知識)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모든 남자는 사람이다. 그리고 에디슨은 남자이다. 그러므로 에디슨은 사람이다’에서와 같은 지식이다. 이를 관계적 지식(關係的知識) 또는 연역적 지식(演繹的知識)이라고 한다.

두 경우의 지식은 모두 간단히 명시될 수 있다. 귀납적인 경우 ‘김씨의 아이들은 모두 아들이다’라는 주장과 연역적인 경우 ‘에디슨은 사람이다’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논리학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근거로서 제시된, 첫째 경우의 사실들과 둘째 경우의 명제(命題)들이 각기의 주장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원리에 입각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조사한다. 첫째의 근거와 주장의 추리관계를 귀납적이라 하고, 둘째의 근거와 주장의 추리관계를 연역적이라 한다. 논리학은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지식의 원리를 취급하는 물리학이나 사회학과 구별된다. 따라서 논리학은 크게 귀납논리학(歸納論理學)과 연역논리학(演繹論理學)으로 구분된다. 양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후자는 19세기 말부터 크게 발전하였고 대부분의 논리학 교재는 이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연역논리학은 연역적 추리에 관련된 많은 문제를 다룬다. 애매와 모호의 구조를 밝히고 오류의 유형을 나누며 추상 ·정의 ·분류의 개념을 명확히 한다. 의미의 표준을 제시하고 번역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사유(思惟)의 법칙과 추리(推理)의 개념, 그리고 체계에 대해서 간단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사유의 법칙으로 알려진 것들은 보통 3가지가 있다. 첫째는 ‘A는 A이다’라는 동일률(同一律)로서 참인 명제는 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순율(矛盾律)로서 ‘어떠한 명제도 동시에 참이면서 또한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어떠한 명제도 참이거나 거짓일 뿐 그 중간치는 없다’라는 배중률(排中律)이다.

과거에는 이 세 명제들이 법칙으로 불렸고, 영원하며 절대적이라 믿었다. 그래서 논리적 법칙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이에 근거한 논리학은 역사가 없다고도 하였다. 논리학은 수정할 수 없으므로 변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치논리학(多値論理學)의 체계는 배중률을 거부하고, 시제논리나 직관주의 논리는 모순율을 수정한다. 그리고 양자논리는 동일률까지 재고하고 있다. 이 명제들을 받아들이는 체계에서는 법칙명제일 수 있지만 모든 체계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에 따라서는 이 명제들이 추리의 원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추리에는 타당한 추리와 부당한 추리가 있다. 추리란 전제들과 결론의 관계이며 타당성은 이 관계의 어떤 성질이다. 그리고 전제들과 결론으로 이루어진 명제들의 집합을 논의라 하므로 타당성은 논의의 성질이 된다. 타당이란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 논의의 성질이다. 앞의 에디슨의 논의가 그 예이다. 또한 ‘한국의 모든 대학들은 시골에 있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은 한국의 대학이다. 그러므로 이화여자대학도 시골에 있다’라는 논의도 그 전제와 결론이 실제로 거짓이지만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제들이 참이라면 결론이 거짓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이란 전제들이 참이라 할지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는 논의이다. 예를 들면, ‘모든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드골은 키가 크다. 그러므로 드골은 프랑스를 사랑한다’라는 논의는 전제들과 결론이 모두 참이라 하더라도 부당하다. 왜냐하면 전제들이 참이라 하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리의 기술 및 그 장치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단논법(三段論法)을 유형별로 논의한 데서 비롯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기호체계(記號體系)를 이루어 강력한 장치를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명제논리학’과 ‘기호논리학’을 참조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어떤 논리학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제안된다. 예를 들면 B.A.W.러셀의 논리체계는 앞의 3개의 사유법칙 명제들 중 어느 하나도 그의 4개의 공리(公理)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명제들은 러셀의 체계 안에서 정리(定理)로서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어떤 체계 안에서는 그러한 어떤 명제가 유도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떤 명제는 이 체계에서 거짓이지만 러셀 체계에서는 참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논리체계란 채택하는 공리들과 추리의 규칙에 따라 상대화한다. 그리고 어떤 비약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이용해 볼 수 있다. 논리체계란 어떠한 이론에도 스며들어 있으므로 어떤 인식(認識)은 체계에 따라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의 논리체계를 분명히 하는 경우 그 인식의 논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근거로 ‘개념(槪念)의 논리’라는 표현이 가능하고 개념분석이 근본적으로 논리적 활동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귀납논리학은 현재의 관찰된 사실로부터 어떤 보편적인 명제를 끌어내는 추리에 관한 연구를 한다. 이 보편적인 명제는 현재 아직 관찰되지 않은 경우도 포함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경우도 포함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에 특정한 수의 황새가 빨간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관찰을 근거로 ‘모든 황새는 빨간 다리를 하고 있다’라는 보편적 명제를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때의 추리의 정당화에 대해 D.흄이 의문을 제기하였고, J.S.밀, 러셀, J.케인스, R.카르나프가 확률이론(確率理論)을 통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C.S.퍼스, J.듀이, 그리고 K.R.포퍼는 이러한 귀납논리학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였다. 그것은 황새의 보편적 명제에 대하여 아직 반례(反例)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퍼스는 그 보편명제가 참이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직 거짓이 아니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보편명제는 ‘법칙’이라기보다 ‘가설(假說)’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퍼스의 귀납성은 빨간 다리의 황새들을 열거하는 데서 찾지 않고 황새의 보편적 명제에 대한 있을 만한 반례의 경우들을 찾아보면서 아직 반례를 얻지 못하는 데서 설명될 수 있다.


#종교 #인물

3. 이 인물은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며, 제사제도를 정하였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확립하였다.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떨쳤으며, 구약성서 시편의 상당부분은 이 인물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인물의 이야기는 구약성경 사무엘기에 나온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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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다윗(David)

 

이스라(이새·Jesse)의 아들로서, 성서에서는 그의 본명이 엘하난(Elhanan)으로 불린다. 소년시절부터 힘이 장사였고 전사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비파에도 능했으며 시(詩)를 지을 수 있었다. 예언자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고 찾아가 그를 알아보고 사울 왕의 후계자로 삼았다. 사울 또한 젊고 뛰어난 전사였지만 왕으로서는 자질이 부족했다.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 다윗이 비파를 연주하자 사울을 괴롭히던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윗은 사울의 부하가 되었다.

성장하여 사울 왕을 섬기고 필리스틴(Philistine, 후일 '팔레스타인 Palestine'으로 불림)의 거인 골리앗에게 돌을 던져 이마에 돌이 박혀 쓰러지자 그의 목을 베어 죽였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움에서 용맹을 떨쳤으나, 사울의 질투로 적대시당하였다. 거리의 여인들은 "사울은 수천을 죽였으나 다윗은 수만을 죽였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Michal)과 결혼하자 사울은 다윗을 더욱 미워하였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미갈의 도움으로 왕궁을 빠져나왔고 사울은 다윗을 도운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600명의 산적의 두목이 되어 필리스틴의 왕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으며 필리스틴 왕은 시글락(Ziklag)이라는 마을을 다윗에게 주어 통치하게 했다. 필리스틴은 다윗이 없는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죽였고 패한 사울은 자살했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유대의 왕으로 추대되었고(BC 1000), 난공불락의 성채였던 시온(오펠언덕)을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시온 성을 다윗 성(城)으로 고쳐불렀다.(BC 994)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신의 언약궤(계약궤)를 옮기고, 제사제도(祭司制度)를 정하였다. 유부녀인 밧세바(Batthsheba)라는 여인을 임신시키고 전쟁을 수행하던 남편 우리야를 죽게 만들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넷째 아이가 솔로몬이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猶太敎)를 확립하였다. 만년에는 자식들 간에 왕위계승의 싸움이 일어나는 등 평온하지 못하였다.

그의 사적(事績)은 구약성서 《사무엘 상(上)》 l6장 이하와 《열왕기 상》 2장 및 《역대기 상》 11∼29장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문화 #스포츠

4. 이 인물은 캐나다 출신의 미국의 체육가이며, 농구의 고안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1891년 12월 21일 이 인물은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한 운동장에서 서로 마주보는 벽에 복숭아 바스켓을 걸고는 새로운 게임에 대한 13가지 규칙을 발표하며, '농구'가 탄생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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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

 

1883년 맥길대학을 졸업, 1890∼1895년에 매사추세츠주(州) 스프링필드의 YMCA대학 체육 지도자를 역임하였다. 1891년에 미식축구의 실내경기화를 착상하다 농구를 고안했다. 1898년에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37년 캔자스대학 체육학 부장을 지냈다.


#역사

5. 이것은 1215년 영국왕 존이 귀족들의 강압에 따라 승인한 칙허장(勅許狀)이며, 라틴어로 '대헌장'이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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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大憲章)’으로 번역된다. 존의 실정(失政)에 견디지 못한 귀족들이 런던 시민의 지지를 얻어 왕과 대결, 템스 강변의 러니미드에서 왕에게 승인하도록 한 귀족조항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원문에는 개조번호(個條番號)가 없으나 18세기 이래 63개조로 정리되어 있다. 새로운 요구를 내놓은 것은 없고 구래(舊來)의 관습적인 모든 권리를 확인한 문서로서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특권의 확인, 지방관리의 직권남용 방지, 사냥, 당면한 애로사항의 처리 등 여러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본래는 귀족의 권리를 재확인한 봉건적 문서였으나, 17세기에 이르러 왕권과 의회의 대립에서 왕의 전제(專制)에 대항하여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최대의 전거(典據)로서 이용되었다. 특히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군역대납금(軍役代納金) ·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고 정한 제12조는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또 자유인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 의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 ·감금할 수 없다고 정한 제39조는 보통법재판소에서의 재판요구의 근거로서 크게 이용되어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었다.

이와 같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투쟁의 역사 속에서 항상 생각하게 되고 인용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서로서 영국의 헌정뿐만 아니라, 국민의 자유를 옹호하는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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