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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거/독서

[독서기록]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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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가 되어 봐야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이미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지만,

아버지라는 것이 혼자 공부해 시험 봐 딸 수 있는 자격증이 아니니, 

아직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경험은 해 보지 못하였다. 

 

이런 내가 아버지가 가졌을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삶의 무게를 감히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한 남자의 삶 또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런 내가 정말 아버지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게 된다.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 직장인으로서 등등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였던 조문객들 통해서 몰랐던 아버지 알게 된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면 말과 행동이 전혀 이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세대 차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짜증 내지만, 그 행동과 말이 이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님의 행동과 말이 이해 가지 않는다면, 내가 부모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p23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도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위처럼 굳건한 마음 한가닥이 말랑말랑 녹아들어 오래전의 풋사랑 같은 것이 흘러넘쳤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버지 숨이 끊기고 처음으로 핑 눈물이 돌았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p24 ~ 25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 날을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p27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p85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p110
나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지 않은 건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마디 말로 정의해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p148
몸을 일으킨 여자가 바람 없는 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고요히 다가왔다. p162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살마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p181
아버지는 얼굴의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어 편안하디편안한 모습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은 어느 근육이든 긴장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세상사의 고통이 근육의 긴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p198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곁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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