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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모음/유 퀴즈 온 더 블럭 퀴즈

[039] 유 퀴즈 온 더 블럭 퀴즈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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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도요새를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가 됐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군 장교들 사이에서 몸집이 작고 움직임이 빠른 도요새를 사냥할 때 명중률이 높은 사람을 가리켜 이것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오늘날 은폐된 위치에서 먼 거리의 목표물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명사수를 의미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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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스나이퍼(sniper)

 

일반적인 전투임무에 우선해서, 적의 지휘관·포병관측장교·기관총 사수 등의 특정인을 비교적 원거리에서 사살하는 임무가 주어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특별한 훈련을 받고, 조준경이 부착된 특별한 소총을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500m 내외의 거리에서 머리부분만 보이는 표적을 단발에 명중시킬 정도의 사격능력이 요구되며, 보병부대가 기관총 등을 사용해서 사격을 개시할 때, 일반 소총병에 앞서서 저격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북한의 보병부대에는 저격병이 편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이것은 고려 시대 때 건립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하던 기관입니다. 이곳의 기본 업무는 왕과 신하가 매일 국정 보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인데요. 오늘날 청와대에서는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기자들의 근무 공간을 이곳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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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춘추관

 

조선 개국 당시까지는 예문춘추관이라 하다가 1401년(태종 1) 예문관과 분리하여 춘추관으로 독립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영사(領事:정1품 영의정 겸임) 1명,감사(監事:좌 ·우의정이 겸임) ·지사(知事:정2품) ·동지사(同知事:종2품) 각 2명, 수찬관(修撰官:정3품) ·편수관(編修官:정3품∼종4품) ·기주관(記注官:정 ·종5품) ·기사관(記事官:정6품∼정9품) 등을 두었는데, 모두 다른 관청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3. 이것은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조선 시대 로켓 무기입니다.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화기를 계량한 이것은 화약을 활용해 화살이 로켓처럼 날아가게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성종 때 발간된 국조오례의서례에는 이것의 자세한 그림과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어 오늘날 복원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로켓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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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신기전

 

1448년(세종 30년) 제작된 병기(兵器)로서 고려 말기에 최무선(崔茂宣)이 화약국에서 제조한 로켓형 화기(火器)인 주화(走火)를 개량한 것이다. 대신기전(大神機箭)·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중신기전(中神機箭)·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병기도설 신기전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신기전은 총 길이 5583㎜, 안정막대 길이는 5310.8㎜이며, 지금의 로켓엔진에 해당하는 약통은 길이 695㎜, 직경 102㎜, 두께 16.2㎜, 내경 63.1㎜, 분사구멍 직경 37.5㎜이다.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의 윗부분에 한지로 만든 약통을 부착하고, 폭탄에 해당되는 방화통을 약통 위에 올려놓고 도화선을 약통과 연결하여 신기전이 목표지점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되었다. 약통에는 화약을 채우고 바닥에 지름 37.5mm 크기의 구멍을 뚫어 화약이 연소되면서 가스를 분출시켜 로켓처럼 날아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사정거리는 약 2㎞에 달하였다.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산화신기전은 총 길이와 안정막대 길이가 5310.8㎜로 같고, 약통의 제원은 대신기전과 같으나 발화통을 변형하여 윗부분이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함께 넣어 적을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신기전은 총 길이 1455㎜, 안정막대 길이는 1406㎜이며, 약통은 길이 200㎜, 직경 28㎜, 두께 5.7㎜, 내경 16.6㎜, 분사구멍 직경 7.2㎜이다. 약통과 발화통의 구조는 대신기전과 같은 구조로 만들었다.

소신기전은 총 길이 1152㎜, 안정막대 길이는 1103㎜이며, 약통은 길이 147㎜, 직경 22㎜, 두께 4.2㎜, 내경 11.6㎜, 분사구멍 직경 4㎜이다. 신기전 가운데 가장 작은 형태로서 대신기전 ·중신기전과는 달리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지 않다. 사정거리는 중신기전이 150m, 소신기전이 100m 가량으로 추정된다. 중 ·소신기전의 발사는 1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했으나 1451년(문종 1년) 화차가 제작된 이후로는 화차의 신기전기(神機箭機)에서 주로 발사하였다.

 

병기도설에 의하면 신기전기는 직경 46mm의 둥근 나무통 100개를 나무상자 속에 7층으로 쌓은 것으로 이 나무구멍에 중 ·소신기전 100개를 꽂고 화차의 발사각도를 조절한 후 각줄의 신기전 점화선을 모아 불을 붙이면 동시에 15발씩 차례로 100발이 발사되었다.

 


4. 이것은 로마 시대 전쟁에서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 한 줌의 값은 일반 병사들의 월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는데요, 또한 이것을 신성하게 여긴 네로 황제는 아내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이것을 태웠다고 합니다. 후추, 정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신료라 불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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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계피(cinnamon)

 

스리랑카 해변의 수목 한계선을 넘자마자 희미한 계피향이 향신료 상인들과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스리랑카 남쪽 해안에 흩어져 있는 플랜테이션들은 이 독특한 향신료를 생산한다. 해외에서 들여온 시끌벅적한 사촌 카시아(cassia)가 계피를 흉내 내곤 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관목처럼 생긴 계피나무(Cinnamomum zeylanicum)는 버들가지 같은 가느다란 가지를 뻗는데, 이 가지에서 ‘깃’이라 부르는 껍질을 벗겨낸 뒤 돌돌 말아 향기로운 덩어리로 만든다.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가까우며, 전통적으로 수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장인의 손이라면 회초리처럼 생긴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안쪽 겹의 껍질을 느슨하게 해서 잘라낸다. 이 껍질을 햇볕에 말려 좋은 것을 골라낸 뒤 최종적으로 돌돌 말아서 모양을 만든다. 경매에서 잘라낸 “막대” 꾸러미 단위로 팔린 계피는 전 세계의 항구로 길을 떠난다.

이집트의 미라 장인들과 로마 제국 황제들로부터 똑같이 사랑을 받은 진정한 계피는 그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달콤한 패스트리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짭짤한 요리에도 마찬가지로 잘 어울린다. 계피 막대는 밥이나 커리에 섬세한 향을 더하며, 고전적인 차이 티나 멀드 와인을 만들 때에도 없어서는 안 된다.

Taste

진짜 계피는 섬세한 꽃향기를 풍기며, 달콤하고, 후추처럼 몸을 따스하게 한다. 방향유를 얻고 방향족 화합물을 보존하려면 세심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5. 이것은 목의 뒤쪽과 그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사람이나 동물이 이것을 잡히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흔히 잘못된 일을 하다 발각되거나 결정적인 약점이 잡혔을 때, '이것 잡히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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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목)덜미

1.목의 뒤쪽 부분과  아래 근처.

2.몸과 아주 가까운 뒤쪽.


 

 

6. 옛 선조들은 정월 대보름에 '이 동물'로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합니다. '이 동물'에게 오곡밥과 나물을 준 뒤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을,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하는데요, 예로부터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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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소

 

음력 정월 15일인 '정월대보름'은 '상원일(上元節)'이라고도 하여 중원일(中元節:7월 15일 百中), 하원일(下元節: 10월 15일)과 함께 '三元節'이라고 했다.

■ 세시풍속


이날에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세시풍속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의 20%가량이 대보름날을 맞아 치러질 정도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만들어 먹는 별식을 '상원절식'이라고도 하는데, 오곡밥·약식·귀밝이술·부럼·복쌈·진채식 등이 있다.

대보름날 새벽에는 땅콩이나 잣, 호두, 밤 등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호두, 잣, 밤, 땅콩 등의 견과를 껍데기 채 '오도독' 소리가 나게 깨무는 부럼은 부스럼 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또 일년 내내 기쁜 소식만 전해달라며 부녀자 애들 할 것 없이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신다.

전날 저녁에는 쌀, 팥, 콩, 조, 수수를 넣어 오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눠 먹고, 갖가지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이런 '묵은 나물'을 진채라고 하며, 가을이 되면 호박고지·박고지·말린가지·말린버섯·고사리·고비·도라지·시래기·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들을 손질해서 겨울동안 잘 말렸다가 대보름 날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었다고 한다.

또 이 날은 세 집 이상의 남의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이웃간에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다.

배추잎이나 김, 혹은 참취나물 이파리를 넓게 펴서 쌈을 싸 먹는 복 쌈(복리:福裏)은 한 입 가득 복을 싸 먹으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더위먹지 않고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보름날 이른 아침 친구에게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말하는데 이를 더위팔기라고 한다.

농사가 잘되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신(地神)밟기', '차전(車戰)놀이' 등을 벌이고, 한 해의 나쁜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에 연을 날려 보낸다.

저녁에 대보름달이 솟아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합장하여 저마다 소원을 빌고 논이나 밭의 두렁에 불을 질러 잡귀와 해충을 쫓는 '쥐불놀이'를 한다.

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달집태우기'와 부녀자들만의 집단적 놀이인 '놋다리밟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집 근처의 다리로 나와 다리를밟고 건넘으로써 한해의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믿어지던 '다리밟기' 놀이를 한다.

 


7. 손과 팔을 연결해주는 손목의 잘록한 부분을 이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ㅁ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일재간이 뛰어난 사람에게 흔히 이것이 좋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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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수완()

 

1.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

2.손목의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


8. 이것은 '늘 옆자리에 두고 가름침으로 삼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학자인 최원은 스스로 지켜야 할 문장들을 칼에 새겨 자신이 앉은 오른쪽에 놓고 평생 되새기며 살았다고 전해지는데요. 이후 사람들이 그 문장을 가리켜 이것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자리 오른쪽에 새겨두는 글'이라는 뜻의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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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좌우명(座右銘)


중국 한나라의 학자였던 최원은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기 위해 글을 지어 자리[
] 오른쪽[] 쇠붙이에 새겨 놓았았다[]. “남의 단점은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말라.” 최원은 자리 오른쪽에 새겨 놓은 이 글을 매일매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최원의 글을 사람들은 ‘좌우명’이라 불렀고 좌우명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9. 이곳은 물이 흐르는 도랑처럼 생겼다 하여 '수구'라고도 불리는 신체 부위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곳의 길이와 깊이를 보고 수명의 길고 짧음을 판단하기도 했다는데요. 명치, 관자놀이와 함께 우리 몸의 대표 급소 부위를 꼽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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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인중(人中)

 

코와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


10. 이것은 먼 데서 일어난 일까지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중국 위나라의 관직자 양일이 부하를 시켜 끊임없이 정보를 모아 먼 곳의 일까지 잘 파악하자 사람들은 "양일이 이것을 가졌다"고 했다는데요. 또한 이것은 국내 최초로 개발된 정지 궤도 위성의 이름이기도 한데요.

기상 및 해양을 관측하여 '우주의 눈'이라 불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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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천리안(千里眼)

 

[유래] : 기원 6세기경 북위()에 양일()이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광주자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흉작이 계속되어 심한 기근이 들고, 굶어죽는 자가 속출()하자 양일()은 곡물 창고()를 열어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관원()들은 멋대로 창고()를 열면 틀림없이 문책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했다. 그러자 양일()이 단호히 잘라 말했다. 「백성()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고 있는데, 군주()가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창고()를 여는 것이 안 된다면 내가 기꺼이 벌을 받겠다.」 그리고는 창고()를 열어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황제()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황제()는 그 조치를 칭찬()했다. 그는 이와 같이 백성()을 진심으로 생각했으며, 혹시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가 있으면 엄중()히 문책했다. 또 관원()이나 병사()가 지방()으로 나갈 때는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식량()을 가지고 가게 했다. 혹시 관원()이나 병사()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굳이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관()의 눈은 천리안이라, 무엇이든 환히 내다보신다. 도저히 속일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람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결코 양일()의 명령()을 어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양일()은 황제위()를 노리는 반대파() 일당에게 미움을 사 아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광주 사람들은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슬퍼했으며, 시골 구석구석까지 그의 명복()을 비는 제단()이 몇 달씩 설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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