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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모음/지뽐 퀴즈

[008] 지적 허세 뽐내기 좋은 퀴즈 모음(난이도 있는 상식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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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1. 이것은 별의 일생 가운데 갑작스런 죽음의 단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항성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여 그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이르렀다가 서서히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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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초신성

 

신성(超新星)은 질량이 태양보다 수십배 큰 별(항성)의 일생 중 마지막 단계.

태양보다 8배 이상 무거운 별은 중심부이 수소가 모두 연소하여 늙은 별이 되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엄청난 밝기의 빛을 발하기 때문에 마치 새로운 별이 생기는 것처럼 보여 초신성이라고 한다.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 많은 가스와 먼지, 중금속 등을 우주에 뿌리며, 방출된 가스나 먼지는 성간 물질과 충돌하여 빛나게 되고 '초신성 잔해'가 형성된다. 초신성 잔해에 들어 있는 이들 물질들은 새로운 별 생성의 원료가 된다.

또 폭발된 별은 중심부에 중성자별이나 밀도가 무한대에 가까운 블랙홀을 남기기도 한다. 중성자별은 밀도가 엄청나게 크며, 또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전자기파를 방출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짧은 주기로 전파를 방출하는 중성자별을 '펄사(pulsar)'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초신성의 폭발로 우주생명체들에 필수적인 각종 원소들 산소, 탄소, 칼슘 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초신성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초신성 폭발은 지난 1604년에 이어 1987년에 관측되는 등 매우 드물게 관측되고 있으나 수 백억개의 은하계로 구성된 우주에서는 초당 1개씩의 초신성 폭발이 이뤄지고 있다.

초신성은 격렬히 폭발하면서 평소보다 수십만~수억배나 밝은 빛을 내뿜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초신성의 모습은 수십억년 전 그곳에서 떠난 빛이 이제 우리 눈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나이가 현재의 절반 정도인 젊은 시절 우주의 모습인 셈이다.


■ 초신성 잔해(Supernova Remnant)

질량이 큰 별이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잔해로, 폭발 후 중심부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되고 주변부는 거대한 가스덩어리를 형성한다.

초신성 폭발에 의해 방출된 먼지, 별의 내부 물질, 가스 등은 우주 공간으로 서서히 퍼져나가 성간 물질과 섞여 새로 합성한 중원소들의 함량을 높이면서 소위 초신성 잔해를 형성한다. 초신성 잔해에는 먼지나 가스 외에 중심에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존재하게 된다.

초신성 잔해는 수십만년 동안이나 화려하게 빛나기 때문에, 광학망원경으로 쉽게 볼 수 있다. 한편 X선과 전파를 방출함으로서 전파와 X선 영역에서도 관측할 수 있다.

황소자리의 게성운(M1)은 대표적인 초신성 잔해이며, 이밖에 카시오페아A, 백조 루프 등이 있다.


#음악

2. 이것은 서양 음악사에 바로크 음악의 이전 시기를 말한다. 대략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음악을 가리키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여러 화려한 성악과 기악 파트가 비교적 같은 중요도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 특징있다. 이 시기의 음악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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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르네상스 음악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란 고대문화의 부흥을 뜻하며, 미술이나 문예에서는 확실히 그와 같은 경향을 정신적 ·기법적인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굳이 그것을 찾는다면 1600년 무렵의 오페라를 부흥의 효시로 들 수 있으나 이는 한낱 공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고, 시대적으로도 음악은 이미 바로크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내용을 보다 넓은 뜻으로 다루어 인문주의적인 예술 창작태도, 조화와 비례의 중시, 합리적인 기법의 탐구, 명확한 표현, 그리고 그러한 음악의 배후에 있는 인간상이라는 점 등에 착안한다면, 15세기 말~16세기의 음악에는 확실히 르네상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이 시대의 음악작품은 음역이 전대의 그것에 비하여 훨씬 넓어지고 새로운 음공간이 개척되어 있다. 이는 회화에서의 원근법의 탐구와 비교가 될 것이며 악보 인쇄술의 발명, 정량기보법(定量記譜法)의 보급도 르네상스의 과학정신과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르네상스음악의 숨결은 14세기 프랑스의 마쇼, 이탈리아의 란디니 등의 작품의 감미로움 속에서도 느낄 수 있으나, 15세기의 부르고뉴악파의 음악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뒤파이 등의 궁정 샹송은 중세의 전통을 답습하면서도 그 인간적인 정감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15세기 말~16세기에 전개되는 플랑드르악파의 음악으로 르네상스음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오케겜, 오브레히트 등에 의한 폴리포니기법의 개척에 이어 조스캥 데프레의 음악, 특히 그의 미사곡에 이르러 르네상스음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성립된다. 그 일관된 모방양식과 명확한 악절구분, 가사와 음악과의 밀접한 연결, 균형잡힌 악곡구성, 완성된 순환(循環) 미사곡의 형태, 미사 각 부에서의 정선율(定旋律)의 유기적인 통일과 변용, 절도 있는 정적인 표출력 등은 음악에서의 르네상스적 요소로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그 후에도 플랑드르악파에서 많은 대작곡가들이 배출되었으며, 특히 16세기 후반의 데 몽테와 라수스의 작품은 그 강렬한 표출의욕면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들 16세기 후반의 후기 플랑드르악파의 음악작품은 뒤에 나오는 제수알도나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 작품 등과 더불어, 미술사상에 있어서의 마니에리스모와 비교될 만한 것이다. 플랑드르악파의 작곡가들은 유럽 전 지역에서 활약하였으며, 그들의 성악 폴리포니기법을 르네상스음악의 국제적 양식으로 삼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페스타, 팔레스트리나, 루차스키 그리고 마렌초, 제수알도, 몬테베르디 등에 의한 마드리갈과 같은 뛰어난 세속음악과 로마의 팔레스트리나에 의한 미사곡, 모테트 등의 교회음악이 나왔다. 또한 베네치아의 조반니 가브리엘리 등의 악기를 곁들인 2중합창 등도 특기할 만하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등 도시 시민계급의 지위향상과 더불어 샹송이 궁정에서 시민들의 가정에까지 파고들어 잔캥 등의 다성(多聲)샹송과 류트반주를 곁들인 독창샹송이 등장하였다. 또, 구디멜 등의 위그노 시편가(詩篇歌)도 독일 프로테스탄트들의 코랄과 함께 주목할 만한 것들이다. 에스파냐에서는 모랄레스, 빅토리아 등의 폴리포니 미사곡과 모테트가 발달하고, 밀란 등의 비우엘라곡, 카베손 등의 오르간음악도 발달하였다. 다소 민중적인 세속음악곡으로는 빌랸시코가 있다.

영국에서는 15세기 말~16세기에 페어픽스, 태버너, 탤리스 등이 폴리포니 교회음악을 작곡하였으며, 영국국교회의 성립으로 교회를 위한 새로운 음악이 나오게 되었다. 버드를 비롯한 이 시대의 영국 작곡가들은 가톨릭과 국교회의 양쪽 교회음악을 다 같이 작곡하였다. 또, 이탈리아의 마드리갈이나 발레토의 영향을 받아 몰리, 기번즈 등의 영국적 마드리갈 ·발레토, 다울란드 등의 류트반주가 따른 가곡인 류트곡 ·버지널곡 등도 나타났다.

독일에서는 플랑드르악파의 작곡가 이자크, 라수스 등의 활약이 눈에 띄며 이들의 영향을 받아 젠플 등의 독일 다성리트가 나타났다. 16세기 말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하슬러 등의 다성합창곡, 갈루스의 2중합창곡 등이 작곡되었으며 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독일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는 독자적인 교회음악이 발달하고 코랄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프레토리우스 등의 교회작품이 나왔다.

그 밖에 포르투갈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의 음악도 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영향 아래 독자적인 발전을 하였다. 이상과 같이 르네상스음악의 중핵은 성악 폴리포니기법이며, 미사 ·모테토 그리고 각종 세속합창곡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기악음악의 발달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오르간을 비롯한 다른 건반악기, 류트나 소합주(小合奏) 등을 위한 무곡, 성악곡의 편곡, 판타지나 전주곡과 같은 소곡 등 각국 특유의 기악작품을 낳고 있다. 그리고 16세기 말에는 각종 극음악의 시도가 이루어져 17세기 바로크음악의 성립과 발전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르네상스의 합리정신은 음악이론면에서도 그랄레아누스의 《도데카코르돈》이나 차를리노의 《화성론》과 같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이론을 낳게 하고 또 계몽적인 음악입문서도 만들게 하였다.


#철학#인물

3. 이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플라톤에게 가르침을 받고,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또한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위장병으로 죽을 때까지 다양한 탐구를 하였다. 서양 철학의 방향과 내용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이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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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이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서양 철학의 방향과 내용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창시자이다. 스승인 플라톤이 초감각적이고 이상적인 이데아를 추구한 것에 반해, 그는 인간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현실주의적인 철학을 하였다. 논리학 체계를 완성하고 인문·사회·자연의 모든 분야에 걸친 학문 체계를 세웠으며, 서양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큰 업적을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도 영향을 주었으며, 여러 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뒷받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한 가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발표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저서들이고, 나머지는 제자 같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저서가 발표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저작들이다. 첫 번째 저서는 그 자신이 '대중용(exoteric)'이라고 부른 것으로, 즉 대중을 위해 대화체나 유행하는 형식으로 쓴 책이다. '기억용(hypomnematic)' 기록과 연구를 위한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모두 남아 있는 '강의용(acroamatic)'으로 불리는 자료나 논문은 짜임새 있고 개성 있는 문체로 적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수백 권의 두루마리 형태로 저작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30권의 분량으로 2,000쪽 정도이다. 고대그리스의 도서목록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물은 총 170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종교

4.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두 도시의 이름이다. 대게 이 두 도시를 한데 엮어서 부르는 게 일반적으로, 기독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죄악의 도시로' 여겨진다. 도덕이 사라지고 부패한 막장행각이 넘치는 광경을 흔히 여기에 비유하는데, 요르단 강 계곡에 위치한 도시였다고 하는 이 두 도시의 이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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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소돔과 고모라

 

 

소돔과 고모라는 창세기 13장에서 요르단 분지의 도시 중 하나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침공을 받은 가나안의 도시국가로 등장한다. 그돌라오멜이 소돔에서 포로를 데려갈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데려간다. 이후 아브라함은 사람들을 모아 롯을 구하고 그돌라오멜을 무찔러 소돔과 고모라를 구한다.

이후 창세기 18장에서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악이 창궐했기 때문에 두 도시를 멸망시킬 것이라 말한다. 아브라함은 의인이 50명만 있으면 도시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에 더 나아가 마지막에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야훼는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역사#인물

5. 이 인물은 고대 로마 황제로 재위 기간은 BC306 ~ 337이다. 이 인물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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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 콘스탄티누스 황제

 

306~337년 동안 로마 황제를 지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시작한 신통치 방식을 계승 발전시켰고,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겼다. 330년 새로운 도시를 콘스탄티노폴리스라 명명하자, 로마는 수도의 자리를 완전히 내놓았다. 그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고,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를 열어 교회 질서에 간섭하였으며, 아타아시우스 파의 정당성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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