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모음/지뽐 퀴즈

[010] 지적 허세 뽐내기 좋은 퀴즈 모음(난이도 있는 상식 퀴즈)

반응형

* 정답은 더보기 클릭 후 확인해 주세요!

 

#종교#인물

1. 이 인물은 구약성경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야곱의 12명의 아들 가운데 11번째 아들로, 야곱이 가장 아낀 부인 라헬의 첫째 아들이다. 이집트에 팔려가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이집트 주변의 흉년과 기근을 예지하고 대책을 미리부터 세웠다. 유대교에서 이 인물은 신에 대한 믿음과 비유대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영리함으로 널리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더보기

정답 : 요셉(Joseph)

 

이스라엘 12부족(部族) 족장의 한 사람이다. 느즈막에 난 아들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형제들의 시기를 샀다. 요셉이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 대상(隊商)에게 팔아넘겼다. 운좋게도 이집트 궁중에 들어가 말단 관원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파라오(바로)왕의 꿈을 해몽한 것을 계기로 왕의 신임을 크게 얻고, 마침내는 총리대신이 되어 이집트 주변의 흉년과 기근을 예지하고 대책을 미리부터 세워 해결하였으며, 기근에 시달린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맞아 태평성대를 누렸다. 진실·순종·인내·사랑 등 이상적 덕목을 갖춘 명재상으로서, 이국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각광받는 인물이다.


#심리학#인물

2. 이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이다.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행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꿈, 착각, 해학과 같은 정상 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꿈의 해석'이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더보기

정답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리보르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빈에 정착하여 1856년 김나지움에 진학하였고, 우등으로 졸업하고 빈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카를 클라우스에게서 사사하면서 뱀장어의 생식기관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정신의학으로 전향하였다. 브뤽케의 정신 역학을 수용하여 생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85년 샤르코와 함께 파리를 방문한 계기로 정신 병리 치료로 전향하였다. 1886년 빈에서 신경병원을 개업하고 많은 임상관찰을 통해 연구에 진력하여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존재를 설정하였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J.브로이어와 공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00년에는 <꿈의 해석>을 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 1930년 괴테 상을 수상하였고, 1938년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런던으로 이주하였으나 구강암으로 고통받다 1939년 사망하였다.

프로이트 당대의 심리학자들은 의식의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프로이트는 그들과는 달리 무의식(unconsciousness)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심리장애는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갈등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무의식 속의 성적(性的) 및 공격적 충동들이 인간행동의 동기적 요인이 된다는 것과 특히 아동기의 성적 충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프로이트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영향 있는 인물 중 명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많은 학자로부터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무의식이 아무런 명확한 원인이 없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너무 쉽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성적 충동, 무의식,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오늘날의 진화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에는 정신분석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견해는 꿈, 창조, 동기, 발달, 성격, 그리고 심리요법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들은 심리학적 연구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와 함께 프로이트의 생각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히스테리의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일상생활의 정신병리>(1904), <성(性)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1905), <토템과 터부>(1913), <정신분석입문>(1917), <쾌감원칙의 피안(彼岸)>(1920), <자아와 이드>(1923) 등이 있다.

 


#역사

3. 이 용어는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 이집트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한 인물을 말한다.'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 어 '페르오(Per-O)' 유래한 그리스 어인 이 용어는 무엇일까?

더보기

정답 : 파라오(Pharaoh)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이 때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모든 신전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파라오는 제사의식을 주관하고 신전을 건설했다.

파라오(Pharaoh)의 어원은 '페르-오'로 이는 본래 '성스러운 권좌'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페르-오'자체가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로 변화했다. 특히 이집트 중왕조(B.C.1550~1292) 시기의 아멘호텝 4세(아케나톤) 통치기 이후 왕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용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페르-오'라는 발음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며 오늘날과 비슷한 '파라오'로 변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으로서, 태양신 라(Ra)에 의해 점지되며, 신과 같은 자격으로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이집트 지역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여겼다. 또한 이집트 고대 신화에 따르면, 파라오는 신과 여인의 결합의 산물인 빛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파라오는 행정의 책임자인 동시에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며, 고위 관리들은 파라오가 우주의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행정적 위계질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었다. 파라오의 주된 종교적 의무는 사원의 건축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지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거처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으므로 왕들은 신전을 지어 숭배와 제식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신전은 종교적 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를 창출하고 관리·배분하는 수단으로서의 경제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라오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그 힘이 쇠약해지면, 이는 신들이 돌보아 주지 않아 이집트가 어둠의 시기를 맞아 경제적으로 쇠퇴한다고 여겨졌으며, 따라서 파라오의 강력한 중앙권력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파라오는 대관식을 통해 왕위에 올랐는데, 대관식에서는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붉은 관과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흰 관을 받았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주신인 '호루스'와 '세트’가 파라오에게 왕관을 씌워 주면서 생명을 전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쟁에 임할 때는 푸른색의 '아테프'라 불리는 관을 착용했다. 이 외에도 파라오는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왕관을 착용했는데, 그 상징은 아직 연구중이다. 대관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파라오는 통일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수도인 멤피스의 성벽을 순례하고 신전에 이름을 새기는 의식을 치르며, 그 동안 백성들은 큰 축제를 벌인다. 대관식이 모두 끝나면 네 마리의 커다란 기러기를 날림으로써 새로운 파라오의 즉위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즉위 첫 해에 파라오는 왕국을 순례한다. 위의 절차를 모두 마친 파라오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상징인 등심초와 파피루스가 얽혀있는 사각형의 옥좌에 올라 국가를 통치한다.

파라오는 5대 왕조부터 5개의 직위를 의미하는 '호루스', '황금의 호루스', '두 여신의 보호자', '상하 이집트의 왕', '라 신의 아들'과 같은 5개의 이름을 가지며, 이름들은 둥근 통 카르투슈에 간직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의 죽음은 태양이 사라져 우주의 조화가 흔들리는 사건이었으므로 백성들은 혼란을 끝내줄 후계자를 기다리며 장례를 치르는데, 보통 무정부상태를 피하기 위해 파라오가 생전에 왕좌에 아들이나 후계자를 함께 앉히곤 했다. 죽은 파라오의 육체는 미이라로 만들어지고,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준비한 영원의 거처인 무덤에 안장된다.

파라오 왕조는 메네스(Menes)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며 세운 왕조(B.C.3500~3150)에서 시작하여 초기 왕조(초대~2대 왕조), 고왕조, 상왕조, 중왕조, 하왕조, 프톨레미 왕조(B.C.332~30)로 B.C. 30년에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기까지 약 3500년에 걸쳐 이어졌다.


#경제

4. 이것은 주주총회에 참석해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배당도 받는 등 주주의 권리, 즉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이며, '본주'라고도 한다. 주주평등의 원칙에 따라 평등하게 배당받는 주식의 일반적인 형태를 말하는 이 용어는 무엇일까?

 

더보기

정답 : 보통주(common stock/ordinary shares)

 

 

소유한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하게 대우받는다는 상법상에서의 주주평등의 원칙에 의거, 지분에 따라 평등하게 잔여이익의 배당과 잔여재산의 분배를 받을 수 있는 통상의 기준이 되는 주식을 말한다. 보통주는 주식 간 평등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익, 이자 배당 시 주식 종류에 따른 특별한 우선권이 없다. 따라서 우선주가 배당을 받은 다음 그 잔여이익에 대하여 배당에 참가한다. 또 회사가 해산한 때에는 우선주 잔여재산 분배가 이루어진 후 분배에 참가하며 회사손실에 대한 부담순위는 1순위이다. 다른 주식에 의결권이 없는 경우에는 회사경영에 대한 최대 지배권을 갖는다.

한편 주식은 일반적 형태의 보통주와 특별한 권리를 가지는 특별주로 나뉜다. 특별주(特別株)에는 우선주(우선적 권리를 갖지만 의결권은 제한되는 주식), 후배주(후위적 지위를 가진 주식), 혼합주(우선주와 후배주의 혼합) 등이 있다. 통상적으로 주식이라 하면 보통주를 말하는 것이며 단일종류로 발행할 때에는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문학

5. 조지프 헬러이 1961년 출판한 이 소설은 영어로 쓰인 가장 뛰어난 전쟁 소설이자 블랙코미디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미국 자본주의 체제를 신랄히 풍자했으며, 베트남전쟁 당시 반전사상에 젖었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반향을 일으킨 소설이다. 이 소설은 무엇일까?

 

더보기

정답 : 캐치 22

 

전쟁의 광기와 지나친 관료주의에 대한 열띤 풍자인 조셉 헬러의 『캐치 22』는 이제는 컬트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1년 출간된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지중해의 피노사 섬에 주둔하고 있는 미 공군 전투기 비행단 소속 조셉 요사리안 대위의 이야기이다. 애국적 이상이나 추상적인 의무감과는 거리가 먼 요사리안은 이 전쟁 자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간주하고, 군이 고의적으로 그를 젊은 나이에 죽게 할 것이라고믿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탈출하기 위한 점점 더 독창적인 방법—여러 가지 질병 증상을 가장하는 것, “캐치 22” 상황의 돌고 도는 논리 속에 갇혀 제정신과 정신병자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것— 을 고안해내는 것으로 소일한다. (헬러가 만들어낸 “캐치 22”는 영어의 신조어가 되었다) 헬러는 미친 원칙주의자 셰이스코프 대령부터 무자비한 전쟁 장사꾼 밀로 마인더바인더까지 일련의 우스꽝스러운 괴짜들을 섬의 온실과도 같은 환경에 들이민다. 헬러는 전쟁을 집단의 광기이자 공적, 사적인 삶의 조직을 넘어서는 정신병으로 보았다. 『캐치 22』는 영웅주의와 “용감한 싸움”의 전통적인 개념에서 등을 돌리고 전쟁을 보다 넓은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이 소설은 유쾌하리만치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반전 선전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극히 진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변화의 물결이 1960년대를 휩쓸기 전까지 미국 전쟁 문학을 지배했던 엄격한 현실주의적 접근에서 발을 뗐다. 『캐치 22』는 로스나 보니거트, 핀천의 작품들과 함께, 전쟁만큼이나 거칠고,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언어의 새로운 반문화적 감수성으로 전쟁을 표현한 미국 문학의 파도를 위해 수문을 열었다.

 

반응형